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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7·22 노르웨이 테러, 14주기의 교훈

by 이리엘 2025.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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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2일, 평화로운 복지국가 노르웨이를 충격에 빠뜨린 연쇄 테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오슬로 도심의 폭탄 테러와 우퇴야섬 청소년 캠프에서의 총격은 단일 범인에 의해 벌어진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며, 유럽 극우 테러의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2025년, 14주기를 맞은 이 사건을 다시 돌아보며,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날의 진실과 현재의 의미를 함께 짚어봅니다.

오슬로에서 우퇴야까지, 단일 범인의 조직적 테러

2011년 7월 22일 오후 3시 26분,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정부청사 인근에서 폭탄이 폭발했습니다. 이 공격으로 당시 총리실 건물과 인근 기관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8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더 끔찍한 범행의 서막이었습니다. 불과 2시간 후, 범인은 경찰복을 입고 40km 떨어진 우퇴야(Utøya)섬의 청소년 정치 캠프에 침입, 무차별 총격을 가해 무려 69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의 충격적인 점은 범인이 단 한 명의 민간인,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Anders Behring Breivik)이라는 극우 성향의 테러리스트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슬람 이민과 다문화 정책에 반대하며, 자국 좌파 정치 세력을 처단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테러 이전, 그는 1,500쪽에 달하는 선언문을 통해 자신의 극단적 사상을 유포했고, 수개월에 걸쳐 철저한 준비와 훈련을 거쳐 계획적인 범행을 실행했습니다.

우익 극단주의의 실체와 사회적 배경

브레이빅이 보여준 행동은 단순히 개인의 정신적 일탈이 아닌, 서구 사회 내 우익 극단주의 이념의 실체를 드러낸 결과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테러를 “유럽을 이슬람화하는 세력에 대한 저항”으로 규정했고, 다문화주의를 서구 문명의 파괴 요인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유럽 전역에서 은밀히 퍼지고 있던 반이민 정서 및 백인 우월주의와 연결됩니다. 특히 2000년대 후반, 유럽은 경제 위기와 이민 증가, 테러 위협 등의 복합적인 불안에 시달렸고, 이에 따라 극단적 민족주의와 반이슬람 정서가 고조되었습니다. 브레이빅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행동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고, 노르웨이 노동당의 청소년 캠프를 좌파 이념의 상징으로 판단해 공격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인터넷 포럼을 통해 사상을 공유하고, 자신을 “기사”로 지칭하며 영웅적 역할을 자처했던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극단주의자가 온라인 공간을 통해 연결되고 조직화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중요한 사례이며, 실제로 이후 수년간 미국과 뉴질랜드, 독일 등에서도 브레이빅의 영향을 받은 모방범죄가 발생했습니다.

14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2025년은 이 참사가 벌어진 지 정확히 14년째 되는 해입니다. 노르웨이 사회는 이 사건 이후 극단주의에 대한 감시와 교육 강화, 테러방지법 개정, 인터넷 혐오 표현 규제 강화 등의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민주주의 사회가 증오와 폭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르웨이는 피해자 가족과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매년 7월 22일을 ‘추모의 날’로 지정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생존자들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증오를 복수로 갚지 말고, 민주주의로 대응하자”는 것입니다. 이들은 상처를 기억하되, 사회의 포용력과 민주적 가치를 더욱 강화하는 데 집중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한편 브레이빅은 현재도 수감 중이며, 형량은 21년형이지만 실제로는 무기징역에 가까운 형태로 복역 중입니다. 그는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종종 극우 단체의 아이콘으로 소비되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은 극단주의가 쉽게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경고이자, 지속적인 감시와 교육, 공론화의 중요성을 시사합니다.

7·22 노르웨이 테러는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어딘가에서 증오와 차별, 극단주의가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14주기를 맞아 우리는 다시 한번 묻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행동으로 이어갈 것인가. 평화와 민주주의는 단지 선언이 아닌, 지속적인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기억하고, 말하고, 행동합시다. 그것이 우리가 이 비극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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